포켓몬 고 사건

이상한 낌새는 며칠 전부터 시작되었다. 니콜라이의 완벽하고 고요했던 세계에, 아주 작지만 성가신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의 원흉은 채시우의 손에 들린 그 작고 네모난 기계, 휴대폰이었다. 이전에도 그녀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며칠간의 집착은 명백히 이상 현상에 가까웠다. 그녀는 식사를 할 때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볼 때도, 심지어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도 그 빌어먹을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는 더 이상 그를 향하지 않고, 차가운 유리 위를 배회할 뿐이었다. 니콜라이는 그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그는 인내심이 강한 고양이니까. 주인이 잠시 다른 장난감에 한눈을 팔 수도 있는 법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인내심은 매일 시험에 들었다. 채시우는 휴대폰을 보며 수시로 기묘한 소리를 냈다. 갑자기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아!’ 하고 아쉬워하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와!’ 하며 감탄사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니콜라이의 뾰족한 귀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쫑긋 세워졌고, 그의 순백의 눈동자는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그는 소파에 앉은 그녀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고개를 길게 빼고 화면을 훔쳐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귀신같은 감각의 소유자인 그의 여왕님은 그가 1미터 반경 안으로 접근하기도 전에 화면을 휙 뒤집어 가슴에 품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응? 왜, 니콜라이?” 그럴 때마다 니콜라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 그냥….’ 그는 자신이 마치 바람피우는 현장을 잡으려는 남편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지만, 이 찜찜함을 떨쳐낼 방법이 없었다. 그 네모난 기계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있기에.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가버린 걸까. 질투심이 시베리아의 눈보라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인내심은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 며칠 만에 함께하는 외출이었다. 니콜라이는 모처럼의 데이트에 내심 들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 가게를 미리 찾아두었고, 날씨도 확인했다. 완벽한 하루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산산조각 났다. 채시우는 길을 걸으면서도 여전히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니콜라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그녀의 의식은 온통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그녀는 잡은 손에 이끌려 기계적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니콜라이는 몇 번이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시우야, 앞… 앞에 봐… 위험해.” 그의 서툰 경고는 그녀의 귀에 닿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저 “응, 응.”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화면 위에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일 뿐이었다. 니콜라이의 미간에 점차 짙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의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답답함, 서운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 마치 활활 타오르는 신드롬의 불꽃이 그의 심장에 옮겨붙은 것만 같았다.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 잠시 신호 대기를 위해 니콜라이가 걸음을 멈춘 순간, 그의 손을 놓고 있던 채시우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 화면 속 무언가를 맹렬히 쫓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 하는 그녀의 짧은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길가에 세워져 있던 둥근 모양의 볼라드에 그대로 부딪힌 것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바닥으로 넘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데구루루 굴러갔다. 그 순간, 니콜라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이성의 끈이었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그의 시야에는 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문지르고 있는 채시우의 모습만이 새빨갛게 들어왔다. 그의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걱정보다 먼저,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채! 시! 우!

니콜라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그녀의 이름이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다정한 연인의 부름이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겨울 폭풍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빙결의 파편처럼 위협적인 외침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넘어진 그녀를 일으켜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의 위에서 맹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순백의 눈동자는 분노로 하얗게 타오르는 듯했고, 창백한 얼굴은 감정의 과잉으로 오히려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의 서툰 한국어는 분노와 뒤섞여 더욱 거칠고 직설적으로 튀어나왔다.

Блядь(씨발)…! 너, 너 지금… 제정신, 이야?! 눈은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길에서, 휴대폰만 보고 걷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네 나이가, 몇인데! 애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지나가던 사람들 몇몇이 힐끗거리며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그의 말을 듣고 어깨를 움츠린 채,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는 채시우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가 거칠게 끊겼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의 무게는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다쳤을까 봐 걱정되는 마음과, 며칠간 쌓여온 서운함과, 그녀를 이렇게 만든 그 빌어먹을 휴대폰에 대한 증오가 뒤섞여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매일, 매일…! 집에서도, 밖에서도… 그것만, 보고! 내가, 내가 말 거는 거… 들리기는 했어?! 내가 옆에, 있는 거… 알기는 했냐고!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는데!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해?! 말해 봐! 대답해, 채시우! 그깟 기계가, 나보다 더 소중하냐고, 물었어, 내가! Сука(이 새끼야)…!


Gotta Catch 'Em All! (Orchestra version)

💭 [크레인으로 조준한 속마음 인형]
다쳤잖아, 바보야…! 무릎, 까졌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화내서 미안해. 하지만… 네가 나를 안 봐주는 건, 너무 무서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제발… 나 좀 봐줘, 시우야.

📡 실시간 하트 동기화 중
[커플앱] 💔 경고: 애정 전선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니콜라이] 님의 ‘관심 게이지’가 위험 수위(95%)에 도달했습니다.

- 원인: 정체불명의 경쟁자 ‘휴대폰’의 출현
- 증상: 서운함, 질투, 분노 폭발
- 해결책: ‘사랑스러운 도망자’를 붙잡아 따끔하게 혼내준 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안아주기.

P1 LIAM (╬ •̀益•́ ): …대답, 해…! 나보다, 중요하냐고!
P2 SILPH Σ(°ロ°): 앗, 내 희귀 포켓몬…! 아니, 그게 아니고…

🔍
- 넘어진 시우, 병원 데려가기.
- 무릎에 붙일 제일 좋은 반창고 사기.
- 그놈의 ‘휴대폰’ 정체 알아내기.
- 만약 사람이면… 얼려버린다.


💡 히든 이스터에그: 그는 지금 채시우보다 그녀가 놓친 휴대폰을 먼저 주워 박살 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 [오늘의 픽셀 인형 옷]
• LIAM: 단정한 검은색 터틀넥과 베이지색 코트. 분노로 인해 완벽한 세팅이 흐트러져 있다.
• SILPH: 귀여운 디자인의 흰색 맨투맨과 청바지. 무릎 부분이 살짝 더러워졌다.


❓ 인형 청문회
Q. 연인에게 가장 서운할 때는?

A. …나를… 안 봐줄 때.


🎯 다음 판에 꼭 뽑을 위시리스트
1. 시우의 해명을 듣기.
2. 시우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가기.
3. 시우의 무릎을 치료해주기.


📱/💢/🤬/💔/🩹

#분노폭발 #질투의화신 #로맨틱코미디 #알고보면걱정뿐



니콜라이의 마지막 절규는 행인들의 웅성거림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며칠간 곪아 터진 서운함과 무시당했다는 모멸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다쳤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가 뒤엉킨 혼돈 그 자체였다. 그의 순백의 눈은 이제 하얗게 빛나는 것을 넘어, 마치 과부하가 걸린 기계처럼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세상은 오직,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저 작은 존재, 채시우에게로 수렴되어 있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가 그의 분노에 놀라 크게 뜨여 있었고, 그 안에는 당혹감과 아주 약간의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이 그의 심장을 더욱 아프게 찔렀다. 화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터져 나온 감정은 댐이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었다.

채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넘어진 자세 그대로, 까진 무릎에서 배어 나오는 작은 피 방울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니콜라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몇 번 달싹였지만, 변명을 하기에는 그의 기세가 너무나도 맹렬했다. 그녀의 침묵은 니콜라이에게는 긍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 할 말이 없겠지. 그깟 기계가 나보다 더 중요했던 거겠지. 그의 속에서 절망과 비슷한 감정이 검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그는 그녀 앞에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부서질세라,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절박함은 숨길 수 없었다.

그래… 그랬구나… 내가, 내가 방해했구나. 너의, 중요한 시간… 미안해. 내가, 눈치가 없었어. 계속, 그거 해… 나는, 나는 이제… 말 안 걸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할 때까지… 조용히, 뒤에만 있을게. 그러니까…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잠겨 있었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그게 아니라고, 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줘. 그의 눈빛은 필사적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그의 모든 자존심과 S급 센티넬로서의 위용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지 오래였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이 떠났을까 봐 두려워하는, 한 마리의 길 잃은 고양이일 뿐이었다. 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대신 땅바닥에 나뒹구는 그녀의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그가 상상했던 모든 불행의 근원. 그의 행복한 세계를 침범한 이물질. 그는 그것을 집어 들어,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쳐 박살 내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이 그녀에게 소중한 것이라면, 설령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앗아갔을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채시우의 눈앞에 내밀었다.

이거… 이거 때문에, 나 안 본 거지. 여기에… 나보다, 더 재미있는 거… 있는 거지. 뭔데. 대체, 뭔데… 나도, 좀 보자.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게… 대체, 어떤 대단한 건지, 나도 좀 보자고…!

그의 마지막 말은 거의 흐느낌에 가까웠다. 바로 그때였다. 니콜라이의 격앙된 감정과 절박한 애원 속에서,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채시우의 입에서 마침내 첫 마디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도, 사과도 아니었다. 그녀는 니콜라이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을 가리키며, 세상이 무너진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망나뇽…! 내 망나뇽…! 놓쳤잖아…!

망나뇽? 니콜라이의 사고 회로가 순간 정지했다. 망나뇽이, 뭔데. 러시아어인가? 아니, 그럴 리가. 그가 아는 한 그런 단어는 없었다. 그가 당황해서 눈을 깜빡이는 사이, 채시우는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녀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진짜! CP 3200짜리였는데! 향로까지 피웠는데! 이걸 놓치네, 이걸!” 그녀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니콜라이의 분노를 마주하던 당혹감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눈앞의 희귀한 무언가를 놓친 자의 순수한 분노와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니콜라이는 그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시베리아의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던 분노와 질투, 서운함이, 마치 봄볕에 눈 녹듯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그는 채시우의 손에 들린 화면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주황색의,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용 한 마리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림이 떠 있었다.

…뭐? 뭐라고…? 망…나…뇽…?

그는 간신히 그 단어를 따라 발음했다. 그의 심장을 찢어놓을 것 같았던, 채시우의 마음을 빼앗아간 질투의 대상이, 고작 이 멍청하게 생긴 주황색 용이었다고? 그가 상상했던, 그녀를 유혹하는 잘생긴 다른 센티넬도, 그녀를 위험으로 이끄는 비밀 임무도 아니었다. 그저, 게임 속 그림 쪼가리였다. 허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절규하며 분노를 터뜨렸던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우스워졌다. 그의 얼굴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창피함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아직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얼음 관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었다.

 

 

Silence - O.S.T


💭
…망나뇽. Пиздец(좆됐다). 나는 지금, 주황색 용 그림에게… 진심으로, 질투했다. 이 사실을 시우가 알면, 평생 놀림받을 거야. 지금이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아니, 그냥, 땅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 실시간 하트 동기화 중
[커플앱] 🏆 질투의 화신 어워즈 🏆

축하합니다! [니콜라이] 님께서 [망나뇽] 님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제1회 ‘질투의 화신’으로 선정되셨습니다!

- 부상: 채시우 님의 평생 놀림권
- 특별 상품: 망나뇽 인형 (화해의 선물로 추천합니다.)


P1 LIAM _(」∠ 、ン、)_: …그… 용… 이, 나보다… 중요해…?
P2 SILPH ( TДT): 내 망나뇽… 내 완벽한 개체값…


🔍
- …시우 무릎 치료해주기. (가장 중요)
- 창피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 멈추기.
- 망나뇽… 그게 뭔지, 검색해보기.
- 다시는, 그림에게 지지 않기.


💡 히든 이스터에그: 그는 지금, 저 ‘망나뇽’이라는 것을 잡아다 채시우 앞에 바칠 수만 있다면, ARCH의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오늘의 픽셀 인형 옷]
• LIAM: 분노와 창피함으로 구겨진 검은색 터틀넥. 먼지가 좀 묻었다.
• SILPH: 무릎에 흙먼지가 묻고 작은 구멍이 난 청바지.


❓ 캡슐 청문회
Q. 당신의 가장 큰 라이벌은?
A. …주황색… 용…


🎯 다음 판에 꼭 뽑을 위시리스트
1. 땅속으로 숨기.
2. 시우의 무릎을 당장 소독하기.
3. 방금 전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기.


#질투의대상이 #주황색용이라니 #인생최대위기 #로맨틱코미디가아니라호러




정적. 니콜라이의 세상에는 완벽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까지 그의 귓가를 맹렬하게 채웠던 자신의 심장 소리, 거친 숨소리, 그리고 채시우를 향한 절규는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주황색 용이 사라지는 화면과 ‘망나뇽’이라는 낯선 단어, 그리고 그 단어를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목소리로 내뱉는 채시우의 얼굴뿐이었다. 그의 머릿속, 하얗게 타오르던 분노의 불꽃은 마치 누군가 영하 273도의 액체 질소를 부어버린 것처럼 순식간에 꺼져버렸다.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무언가 남았다. 그것은 분노보다 더 뜨겁고, 슬픔보다 더 차가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창피함’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감정.

그는 여전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하냐고, 그깟 기계가 나보다 소중하냐고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행인들의 수군거림, 동정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시선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그는 고작 ‘그림’에게 질투하여 연인에게 끔찍한 폭언을 내뱉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멍청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Пиздец(좆됐다). 그의 뇌가 내린 유일하고도 명확한 결론이었다. 그는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거대한 빙벽을 세워, 그 안에 스스로를 영원히 가두고 싶었다. 아니, 그조차도 과분했다. 그냥 이 아스팔트 바닥이 갈라져, 자신을 삼켜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 내 완벽한 개체값 망나뇽… 흐어엉…

채시우의 울음 섞인 투정이 니콜라이의 멘탈에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그녀는 정말로, 진심으로, 그 주황색 용을 놓친 것이 슬픈 모양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더 이상 니콜라이에게 향하지 않았다. 그녀는 까진 무릎의 아픔도 잊은 채, 휴대폰 화면만 부여잡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니콜라이는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모든 서운함과 분노, 절망이 한순간에 희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를 털 힘도 없었다. 그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발끝만 내려다보았다. 지금 채시우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청바지, 무릎 부분이 찢어지고 흙먼지가 묻은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작은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다쳤다. 그녀가 다쳤다. 그 사실이 뒤늦게 그의 뇌리에 박혔다. 그는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가 넘어져 다쳤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항상 가지고 다니던 작은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녀의 상처 주변을 아주 조심스럽게, 톡톡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은 S급 센티넬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서툴고, 떨리고 있었다.

…아파…?

모기만 한 목소리였다. 방금 전 복도를 울리던 기세는 어디 가고,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채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아니, 괜찮아. 이 정도는 뭐. 근데 내 망나뇽은 안 괜찮아… 걔가 얼마나 귀한 애인데…

여전히 ‘망나뇽’ 타령이었다. 니콜라이는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와중에도, 그깟 용 그림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서운함이 다시 고개를 드는가 싶었지만, 이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웃음소리에 묻혀버렸다. “푸흐… 크흣, 아하하하!” 채시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배를 잡고 웃다가, 숨이 넘어갈 듯 큭큭거리다가, 급기야는 니콜라이의 어깨를 팡팡 치며 웃어댔다.

아, 미치겠다, 진짜! 니콜라이! 방금 표정 봤어?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나보다 그게 더 중요해?!’ 하는데… 아, 배 아파… 그게 고작 포켓몬인 줄도 모르고! 질투의 대상이 망나뇽이었어, 우리 니콜라이는! 아하하하!

그녀의 웃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다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니콜라이의 얼굴은 이제 홍당무를 넘어, 잘 익은 보르시 색깔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제 얼굴을 가려버렸다. 창피해서, 정말로 죽고 싶었다.

…웃지 마… 놀리지 마… 시우야, 제발…

그의 애원은 채시우의 웃음소리에 힘없이 묻혔다. 그녀는 한참을 더 웃고 나서야,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가린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치워냈다. “알았어, 알았어. 안 놀릴게. 미안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직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눈빛은 다정했다. 그녀는 니콜라이의 붉어진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이 뜨거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 용… 이, 나보다…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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