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 사건

니콜라이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고요한 세계에서, 채시우라는 존재는 가장 아름다운 변수이자 가장 예측 불가능한 태풍이었다. S급 바람 속성 가이드. 그녀의 공식적인 직함은 그럴듯했다. 전장에서 그녀는 아군의 능력을 증폭시키고, 적의 진영을 흩트리는 한 줄기 강력한 바람이었다. 그녀의 가이딩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처럼 그의 존재를 안정시키고, 그의 얼어붙은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녀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이드 중 한 명이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공식적인 평가. 보고서에 기록된 데이터. 하지만, 니콜라이 코토프만이 알고 있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는 종종 진지하게 고뇌했다. 나의 아내, 채시우는… 혹시, ‘폐급’이 아닐까?

‘폐급’. 그가 한국에 와서 배운 여러 단어 중, 유독 그의 뇌리에 깊게 박힌 단어였다. 못쓰게 된 물건. 쓸모없는 인간. 고문관. 처음 바이브가 신병 시절의 멍청한 실수를 투덜거리며 그 단어를 사용했을 때, 니콜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기이하게도 사랑하는 약혼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물론, 그는 감히 그 단어를 그녀의 면전에 대고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의 인생이 폐급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혼자 있을 때, 특히 그녀가 벌인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떠올릴 때면,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라고.

첫 번째 의심이 싹튼 것은, 부엌에서였다. 어느 날, 채시우는 큰맘을 먹은 듯 그를 위해 러시아 음식을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했다. 펠메니. 그가 어릴 적 할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시베리아의 추위를 잊게 해주던 따뜻한 만두. 니콜라이는 내심 감동했다. 그의 조야, 그의 시우가 자신을 위해 서툰 솜씨로나마 무언가를 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는 식탁에 얌전히 앉아, 기대감에 찬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녀가 바람 속성 가이드라는 사실을 모두가,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도 가끔 잊어버린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는 밀가루를 반죽하며 외쳤다. “니콜라이! 나 좀 멋있지 않아?”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제어되지 않은 미세한 돌풍이 일었다. 콰앙! 하는 소음은 없었다. 그저, ‘후우…’ 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함께, 부엌에 있던 모든 밀가루가 새하얀 눈보라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니콜라이는 눈을 깜빡였다. 시베리아의 블리자드도 이보다는 자비로웠을 것이다. 부엌 전체가,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채시우와 니콜라이가, 순식간에 하얀 밀가루 유령으로 변해버렸다. 그는 입을 열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고운 밀가루뿐이었다. 그는 콜록거리며 밀가루를 뱉어냈고, 그의 눈앞에는 온몸이 하얗게 변한 채, 양손에 반죽 덩어리를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채시우가 보였다. 그녀는 말했다. “어… 눈 온다, 니콜라이.” 그 말에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Блядь(씨발)… 폐급이다, 이건.

두 번째 사건은 훈련 중에 발생했다. 그날은 팀 단위의 가상 전투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상대는 신드롬이 이끄는 팀. 늘 그렇듯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니콜라이는 그의 주특기인 빙벽을 세워 전장을 재구성하고, 아군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완벽한 전략이었다. 그는 빙벽 뒤에서 다가올 채시우의 버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 버프가 그의 얼음과 합쳐지면, 빙벽의 내구도는 물론 범위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프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는 통신기를 통해 그녀를 불렀다. “시우, 뭐 해. 버프… 빨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신드롬의 불꽃이 빙벽의 예상치 못한 지점을 강타했다. 약해진 부분이었다. 니콜라이는 급히 빙벽을 보수하며 초조하게 그녀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보고 말았다. 그의 사랑스러운 약혼녀, S급 가이드 채시우가… 전장 한가운데 핀, 작고 노란 민들레꽃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그녀는 통신기도 내팽개친 채, 진지한 얼굴로 민들레 홀씨를 향해 입김을 ‘후-’ 불고 있었다. 홀씨가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 순간, 신드롬이 외쳤다. “야! 거기 민들레! 너 지금 전쟁 중에 소꿉놀이하냐!” 니콜라이는 이마를 짚었다. 그는 그날, 훈련이 끝나고 신드롬에게 머리가 터지도록 잔소리를 들었고, 시말서를 세 장이나 써야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저건, 폐급이 틀림없어….

세 번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터졌다. 니콜라이는 고양이처럼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그가 가장 아끼는 영역은 채시우와 함께 쓰는 침대의 ‘자신 쪽’ 이었다. 그는 언제나 침대의 오른쪽에 누워 잠이 들었고, 그곳은 그의 온기와 향으로 가득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임무를 마치고 피곤에 절어 방으로 돌아온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자리에, 채시우가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괜찮았다. 그녀가 피곤할 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온몸에 무언가를 잔뜩 붙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짝이는 스티커, 알록달록한 보석, 심지어는 작은 리본까지. 그녀의 잠옷과 팔, 다리, 심지어 얼굴에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스티커들은 침대 시트와 그의 베개에도 무자비하게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시우야, 이게… 다 뭐야?” 잠결에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 바이브가, 딸내미 스티커 놀이 세트… 줬어… 예쁘지…?”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그날 밤, 끈적이는 스티커 자국을 피해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자야만 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S급 요원의 침실을 딸내미 스티커 놀이터로 만드는 존재라니. 이건, 폐급을 넘어선 무언가다. 재앙이다.

니콜라이는 소파에 누워,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채시우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지난날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밀가루 범벅이 되었던 그녀, 민들레 홀씨를 불던 그녀, 스티커를 잔뜩 붙이고 자던 그녀. 하나같이 S급 요원이라고는 믿기 힘든,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모습들이었다. 그래, 그녀는 폐급이 맞을지도 모른다. 효율을 중시하는 라임이 봤다면 혀를 찼을 것이고, 엄격한 신드롬이 봤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녀는 가끔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때로는 아이보다도 더 제멋대로 굴며, 종종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밀가루 눈보라 속에서 ‘눈 온다’며 웃던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민들레 홀씨를 불던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로워 보였는지. 스티커 범벅이 된 채 잠든 그녀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그녀의 그런 ‘폐급’ 같은 모습들이, 그의 얼어붙었던 세상을 얼마나 다채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는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의 종합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폐급이다. 하지만, 오직 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만의 폐급. 그는 잠든 그녀의 이마에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그의 세상의 모든 기준은, 결국 채시우, 그녀 하나로 통했다.

You Are My Everything - 거미

💭 [크레인으로 조준한 속마음 인형]
그래… 폐급이 맞아. 하지만… 내 거야. 나만의,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폐급. 아무한테도 안 줘. 평생, 나만 감당할 거야.

📡 실시간 하트 동기화 중
[❤️ 니콜라이의 비밀 평가 보고서 ❤️]

- 평가 대상: 채시우 (코드네임: 실프, 애칭: 나의 아내)
- 평가 항목: S급 요원으로서의 적합성

- 사례 1: 밀가루 눈보라 사건 (부엌테러)
- 사례 2: 민들레 홀씨 사건 (전장이탈)
- 사례 3: 스티커 침공 사건 (영역침범)

- 종합 결론: 폐급. (하지만 귀여움. 그리고 내 거임. 반박 시 얼려버림.)

LIAM (´-ω-`): …그래서, 결론은… 넌 내 거야.
SILPH (-_-) zzz: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
- 밀가루 10kg 주문하기 (시우가 또 하고 싶어 할지도 몰라)
- 거실에 작은 화분 들여놓기 (민들레는 안 돼)
- 예쁜 스티커 많이 사두기 (내 베개에는 붙이지 말 것)

💡 히든 이스터에그: 그는 사실, 채시우가 민들레 홀씨를 불던 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얇은 얼음 장벽을 쳤었다. 아무도 모르게.

👕 [오늘의 픽셀 인형 옷]
• LIAM: 편안한 검은색 니트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
• SILPH: 귀여운 동물 그림이 그려진 박시한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 (니콜라이의 무릎 베고 자는 중)

❓ 인형 청문회
Q. 당신의 약혼녀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A. …내 세상.

🎯 다음 판에 꼭 뽑을 위시리스트
1. 잠든 시우 얼굴 계속 보기.
2. 시우가 깨면 뽀뽀하기.
3. 저녁으로 따뜻한 펠메니 먹기 (이번엔 내가 만든다).

🤔/🤦/🥰/❤️/💍

#고찰 #나의폐급 #결론은사랑 #로맨틱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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